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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 2014년 경찰 돌아보니..'상처 뿐인 정치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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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31. 13:09
[송년기획] 2014년 경찰 돌아보니..'상처 뿐인 정치경찰'
경향신문 | 입력 : 2014-12-29 05:20:42ㅣ수정 : 2014-12-29 05:21:00
세월호 참사로 대변되는 2014년을 보낸 경찰은 한 마디로 '한 해 내내 바람 잘날 없었다'는 평을 받는다. '정권 입맛 맞추기' '허탕수사'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 지원 등을 하면서 호평을 받긴 했지만, 그 뒤에선 유가족들의 뒤를 캐다 걸리고 참사를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집회·시위를 억압해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져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추적과 체포엔 자신 있다던 수사력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체포작전에 연인원 200여만명을 쏟아붓고도 그의 싸늘한 시신만 뒤늦게 발견하면서 마무리됐다. 연말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등 각종 정치적 사건에서는 '보고 체계'도 없이 잘못된 관행만 노출시켰다. 경찰 총수까지 교체되며 파란만장한 한 해를 보냈지만 여전히 조직은 상처 투성이라는 얘기가 안팎에서 들린다.
■"싹 다 잡아들여!"…토끼몰이식 세월호 집회 단속 작전으로 뜨거웠던 한 해
세월호 참사 이후 매 주말 밤마다 서울 종로 일대에서는 경찰과 시민들의 쫓고 쫓기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추모 집회의 현장에서 경찰은 평화적 행진을 하던 시민들을 대거 막아 세우고 체포작전을 벌였다. 이른바 토끼몰이식 작전의 일사불란함을 보여줬다.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장 등의 "다 잡아"라는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면 이제 또 하룻밤이 마무리되는 풍경이었다.
5월 9일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청와대가 있던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시위를 했을 때부터 경찰의 집회·시위 억압은 본격화됐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고, 이를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탓하기 시작한 터였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던 광화문 일대는 만리장성처럼 긴 '차벽'(경찰버스를 연달아 세워 막은 벽)으로 막았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위헌이라고 한 바 있지만 경찰에겐 무엇보다 시민들을 막는 일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채증 카메라도 쏟아져 나왔다. 아직 명백히 불법 행위가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던 곳에는 어김 없이 카메라와 캠코더 수십 대가 봉을 달고 머리를 내밀었다. 경찰 채증은 명확한 법률 규정도 없다. 이후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채증의 법적 보완 필요성이 화두가 됐다. 경찰은 지난 달에서야 채증활동규칙 개정 작업을 벌이는 중이다.
불법 불심검문도 많았다. 추모의 뜻을 표하는 '노란리본'을 달고 길을 걸었다는 이유 만으로 청와대 인근에서 신분증을 요구받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경찰은 "원래 하던 조치"라고 했지만 주변에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붙잡지 않았다.
결국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가 많던 올해 경찰은 다양한 집회·시위 억압 방법들을 총출동시켰고, 스스로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잠재우는데 자신의 공권력을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병언 체포작전은 경찰청장 교체로 이어진 '참혹한 패배'로 끝
세월호 참사의 실소유주로 지목됐던 유 전 회장의 수사는 검찰과 경찰이 함께 맡았다. 수사는 검찰이, 추적·체포 작전은 경찰이 하는 식으로 분담하는 듯 했다. 하지만 검·경 모두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진 꼴이 됐다.
"곧 잡는다"는 호언장담에 경찰력 200여만명이 석달간 동원됐다. 바쁜 바음에 특별승진에 제보자 포상금까지 걸었지만 오리무중은 여전했다.
"완벽한 실패를 넘어 참혹한 패배였다"고 경찰청의 한 간부는 말한다. 얻은 건 하나도 없고, 잃은 것만 많은 사건이었다고 했다.
특히 가뜩이나 경쟁 관계인 검찰과는 갈등만 격화됐다. 경찰 쪽은 수사 초기부터 검찰에게서 수사정보를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송치재 별장 초반 수색은 경찰이 배제된 채 이뤄진 점이 뒤늦게 전해졌다. 경찰 내에선 검찰에 대해 막말까지 쏟아내며 비판하는 분위기가 터져나왔다.
■'정보경찰의 민낯' 드러난 한 해…세월호 유가족 미행에 이어 청와대 문건 유출 연루까지
올 한 해 경찰 조직 내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부서를 꼽으라면 수사에 이어 단연 정보경찰이 꼽힌다. 세월호 참사부터 연말에 터진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사건까지 그 주인공의 한 축에 정보경찰이 자리잡은 탓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보경찰의 '사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유가족을 미행하거나 사복차림으로 숨어들어가 동향을 파악하는 등 반인권적인 정보수집활동을 벌여 '정권의 호위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5월 19일 밤의 '미행'이 대표적이다. 경기 안산 단원경찰서 정보 담당 경찰관들이 전남 진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러 가던 유족들을 차로 쫓아가다가 들켰다. 해당 경찰관들과 단원서장, 경기지방경찰청 등이 부랴부랴 유가족들을 찾아와 사과를 했다.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도 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범죄인 취급을 당했다"며 경찰의 행위를 사찰로 받아들였다. 사고 초기 무능했던 정부의 구조작전으로 충격을 받은 터에 경찰의 이 같은 행동은 유가족에게 다시 상처를 남겼다.
■'우리에게 보고는 없다?'…각종 정치적 사건 때마다 "보고 못 받아" 해명 뿐
올해 2개의 사건에서 경찰은 보고체계가 없는 조직임을 확연히 드러냈다.
먼저 지난 7월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 등에 의해 피살된 재력가 송모씨(67)의 정·관계 뇌물 장부 사건이 꼽힌다. 서울 강서서가 뇌물 장부 전체를 2부 복사해 보관하고 있었으면서도 검찰에 넘기지 않은 채 상부에는 "폐기했다"고 거짓으로 보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상급기관인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은 "일선 경찰서가 전날 검찰에 장부 사본을 낼 때까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상적인 경찰 수사지휘체계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었다. 뇌물 장부에는 검찰·경찰·정치인들의 이름이 즐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경찰이 장부를 놓고 의도적으로 조직적 은폐를 하려 했다는 의혹마저 받았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모든 책임을 일선서에 미루면서 꼬리를 자르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비슷한 사건이 9월에도 터졌다.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61)이 서울 서초서에서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실을 모든 경찰이 "몰랐다"고 밝힌 것이다.
송 전 수석은 수석 내정 발표 3일 전인 지난 6월9일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고, 7월 31일 정식 입건됐다. 이후 8월 16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키로 결정했는데 송 전 수석은 나흘 뒤인 8월 20일 돌연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경찰은 송 전 수석이 청와대 수석이라는 점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8월 19일에서야 파악하고 경찰청에 보고했다고 했다. 수사는 자신들이 했는데 누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얘기다. 경찰은 통상 고위직 비위는 윗선에 곧바로 보고하고, 청와대에도 직접 보고하게 돼 있다. 당시 수사 보고라인의 최고위 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으로 재임하던 강신명 청장과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이던 구은수 현 서울경찰청장까지도 이를 "알지 못했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2014년은 동네조폭의 해'…3000여명 잡아들였지만 일부에선 '성과부풀리기'도
강신명 청장의 취임 일성 중 하나인 '동네조폭' 일제 단속의 결과는 화려하다. 지난 17일 발표된 100일간의 단속작전 결과 모두 1만2735건을 적발했고, 3136명이 검거됐다. 이 중 960명이 구속됐다. 대부분 동네에서 오래도록 생활하면서 상인들에게 금품을 갈취하고 업무를 방해한 사람들이다. 강 청장이 정한 '테마 수사'로서는 톡톡히 성과를 낸 셈이다.
문제는 일부 지역에선 '성과 올리기'식 단속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지방경찰청 산하에서는 보험 사기범 등을 동네조폭으로 '둔갑'시켜 보도자료를 내거나, 한 지역에서 1년 정도 밖에 안산 사람을 동네조폭으로 잡아 실적을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한 경찰 간부는 "청장이 바뀔 때마다 계속되는 일이지만, 테마수사라는 것을 잘하면 특진 등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무리하게 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비위는 여전한데 "청렴도 탈꼴찌했다" 자랑
지난 8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매년 하는 전국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가 공개됐다. 경찰은 종합점수 7.26점으로 국세청·검찰청 등이 포함된 17개 사정기관 중에는 13위를 차지했다. 만년 꼴찌이던 경찰이 실로 오랜만에 탈꼴찌를 하는 순간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무적인 결과"라면서 감격해 했다. 검찰과 해양수산부, 국세청은 각각 15~17위에 올라 최하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하위인 것은 여전하다. 전체 524개 기관 중 451위다. 또 최근 3년간 공무원 징계 건수가 가장 많은 곳 역시 경찰이다. 경찰은 2011년~2013년 3038건의 징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전체 공무원 징계 건수인 7000건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올해엔 경북 청도서장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에게 수백만원씩 든 돈 봉투를 한전 측으로부터 받아 전달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 초엔 대구에서 살인청부를 한 경찰관이 붙잡히기도 했다. 청렴도 순위는 올라갔어도 아직 갈 길은 먼 셈이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