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접할 수 있게 허용한 뒤, 접속자 IP 체크
시사인 뉴스[337호] 승인 2014.03.04 08:43:13
북한 방송을 위성으로 받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통일방송>이다. 북한 연구 등의 목적으로 허용되었고,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접속자 IP를 추적해 이적행위 증거로 삼고 있다.
정희상 전문기자 | minju518@sisain.co.kr
박근혜 정부 들어 무리한 공안몰이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중국 정부 공문서 3건을 위조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정황이 들통나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공안 당국이 평양에서 송출하는 <조선중앙TV>를 실시간으로 국민이 접할 수 있게 편법 허용한 뒤 접속자 IP 체크를 통해 ‘간첩사건 만들기 어장관리’용으로 활용해온 정황이 <시사IN>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해당 방송이 송출되는 인터넷 사이트는 <통일방송(www.sptv.co.kr)>으로, 운영자는 1993년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출신 사업가 임 아무개씨다. 임씨는 “9년 전부터 경찰청 보안과 관리 아래 조선중앙TV 화면을 위성으로 받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통일방송> 송출 허가 및 관리 주체는 경찰청 보안과다.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 아래 공안 사건을 취급하는 곳이다.
현재 국내에서 북한 생방송을 실시간 송출하는 것은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당초 정부가 ‘특수자료 취급 인가증’만으로 이 방송을 허용한 것은 국내 북한학 연구자와 일부 정부 부서의 수요 때문이었다고 한다. 각 대학 북한학과 교수와 남북관계 연구소 연구원, 정부와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 관련 부서 공무원들이 손쉽게 북한 동향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기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와 국립도서관, 국회도서관 등에서도 북한에서 제작한 각종 영상자료를 접할 수는 있지만, 이용하기가 번거로운 데다 실시간 자료가 아니라서 북한 연구자들에게는 생방송인 <통일방송>의 유용성이 크게 부각됐다.
국정원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방송을 접속한 국민은 50만여 명, 그 가운데 수시로 시청하는 인구는 1만여 명 선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회담을 앞두고는 접속자가 단기간에 20여만 명으로 폭주하는 등 실향민들도 이 방송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인터넷을 통해 <통일방송>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누구든 회원 가입 없이 손쉽게 조선중앙TV 화면을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생방송 외에 북한 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을 선별해 따로 내보내는 녹화방송 코너도 마련돼 있다. 또 화면 상단의 ‘평양방송’ 자막을 누르면 ‘대남방송’과 ‘김일성 다큐·김정일 다큐·김정은 동향’ 등 북한에서 제작해 송출한 각종 선전용 녹화 영상물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부터 당초 정부가 이 방송의 송출을 편법 허용할 때 내세운 ‘연구 목적’이라는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접속자 체크를 통해 공안 사건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인데, <통일방송> 악용 행태는 공안 드라이브가 절정에 달한 지난해 두드러졌다.
먼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적표현물’ 중에는 남한에서 아무나 시청할 수 있는 <통일방송> 녹화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이 사건 변론을 맡은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이 법원에 제출한 국보법 위반 증거자료 가운데는 조선중앙TV 화면에 <통일방송> 로고가 찍힌 것도 포함돼 있었다. 또 피고들이 중국에서 몰래 들여왔다는 북한 선전 영상물 CD도 <통일방송>에 접속하면 아무나 다운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재판 도중 <통일방송> 운영자인 임 아무개 사장에게 ‘이적표현물’이라는 이들 증거가 실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라는 걸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통일방송>은 경찰청 소관이라면서 거절했다.”
이에 대해 <통일방송> 운영자인 임 아무개 대표는 “이석기 사건 변호인이 사실 확인 조회를 요청해와 경찰청에 보고했더니 ‘그런 데 끼지 말라’고 해서 나설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임씨는 이어 “내가 9년간 평양방송을 생방송으로 틀었고 관련 영상 자료도 산더미처럼 갖고 있기에 국정원과 검찰이 수시 검열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만일 우리 <통일방송>을 ‘이적 행위’의 증거로 이용했다면 이상한 공안 정책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 ‘언론자유’ 사례로 들기도
결국 정부가 북한 연구라는 특수 목적을 명분으로 편법 인가를 내준 <통일방송>이 현 정부 들어 ‘공안 사건 만들기’에 은밀하게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정부가 교묘한 방법으로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인식한 <통일방송> 임 대표는 편법으로 운영되는 이 방송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방송 송출 허가권자인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줄기차게 법적 뒷받침을 요구해왔지만 묵살당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시절부터 방통위를 찾아가 합법적인 송출을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특별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당분간 제도권 밖에 머무르며 활동하라는 답변만 들었다”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처럼 <통일방송>을 치외법권 지대에 방치하면서 국제적으로는 ‘한국은 언론자유가 있는 나라’라는 홍보 근거로 활용했다. 2009년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 수준을 감시하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이명박 정권의 언론자유지수가 크게 하락했다고 발표하자 정부는 “대한민국은 모든 가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북한 방송을 실시간 시청할 수 있도록 허용할 정도로 언론자유가 만개한 나라다”라는 요지의 반박문을 이 단체에 보냈는데, 그 사례로 든 것이 바로 <통일방송> 허용이다.
결국 정부는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북한 생방송 송출을 허용하면서 한편으로는 공안몰이에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언론자유가 보장된 나라인 것처럼 선전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펴왔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심재환 변호사는 “당초 북한 연구자에게 북한 정보를 제공하는 통로로 만든 <통일방송>을 국가권력이 편의적으로 악용해 보안법 위반자를 가려내는 통로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그물을 쳐놓고 보안법 위반에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어장관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방송의 실체와 악용 사례가 알려지면 개별 피고인에게는 유리할 수도 있지만 수많은 북한학 전공자들에게는 갑갑한 측면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방송이 본래의 순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시사IN>이 경찰청 보안과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통일방송>의 법적 근거를 묻는 취재에 들어간 2월19일 오후부터 <조선중앙TV> 생방송이 갑자기 중단되고 녹화방송과 평양방송 자료 화면만 남았다. 지난 9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송출되던 생방송이 왜 갑자기 중단됐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의문의 묻지만 흉기난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경찰들에 사실 돈 줬다, 다 불어버린다고 해" (0) | 2014.05.15 |
---|---|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국정원 관행이 빚은 참사 (0) | 2014.05.09 |
채동욱 뒷조사 의혹 결론낸 검찰, '靑방패막이 수사' 논란 (0) | 2014.05.09 |
채동욱 진상조사 법무부 감찰관, 금감원 감사 내정 '낙하산' 논란 (0) | 2014.04.11 |
현직 검사 ‘경찰 구속영장 찢고 폭언’ 논란 (0) | 2014.03.31 |
나(유영식)의 운명과도 같은 강기훈씨/~ "검찰은 강기훈의 죽음만을 기다리는가?" (0) | 2014.02.28 |
언론인 884명 "이진한 검사 성추행 처벌" 촉구 (0) | 2014.02.26 |
[단독] 중국내 대북정보활동 사실상 마비..증거조작 의혹 후폭풍 (0) | 2014.02.26 |
국정원 앞에만 서면 '덜덜' 떠는 檢察 - "증거조작, 박원순에 대한 종북몰이 위한 것" (0) | 2014.02.22 |
[단독]국정원, 조작증거 의혹 해명도 거짓말 & '좌익효수'국정원 직원, 간첩조작 사건에 깊숙히 개입 (0) | 2014.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