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피살여대생 父 "눈도 못 감은 딸…정의는 죽었다"
"살인자들을 1년간 쫓아 해외에서 잡아왔지만...."
노컷뉴스 | 2013-05-28 10:55
CBS < 김현정의 뉴스쇼 >
- 11년 전 허망히 주검으로 돌아온 딸
- 사체실서 감긴 눈 뜨던 순간 잊지 못해
- 1년간 추격끝에 범인 잡아 넘겼건만
- 무기징역 윤 씨 호화병실 생활이라니
- 가진자들 법 농락 "철저 수사 촉구"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하OO 씨 (청부 피살 여대생 故 하지혜 아버지)
2002년 발생한 여대생 청부살인사건,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온몸에 골절을 당하고 얼굴에 공기총 6발을 맞아서 숨진 이 여대생. 알고 보니까 자신의 사위와 불륜관계라고 오해한 한 재벌가 부인이 청부 살해를 한 거였습니다. 공부밖에 모르던 법대생 딸이 엉뚱한 오해로 인해서 살인까지 당하게 되자 피해자의 아버지는 이 살인자들을 1년간 쫓아서 결국 해외에서 잡아왔고요. 청부살인업자와 이 재벌가 사모는 감형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그게 2004년의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이미 잘 알려진 얘기죠. 그런데 수감된 줄 알았던 이 재벌가 부인이 호화병실에 머물면서 유유히 외출까지 다니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합니다. 딸아이가 죽은 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분, 고 하지혜 양의 아버지를 직접 만나보죠.
◇ 김현정 >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이제는 드려도 괜찮을까요?
◆ 하OO > 네, 말씀하십시오.
◇ 김현정 > 일단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11년 전으로 잠깐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2002년에 딸 하지혜 양은 법대생이었죠?
◆ 하OO > 그때 이화여대 법대 4학년생이었죠.
◇ 김현정 > 그런데 재벌회장 부인 윤 씨는 어쩌다가 자기 사위와 하 양이 불륜 관계라고 의심을 하게 된 겁니까?
◆ 하OO > 그게 지금 수사 기록상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 사위가 학교 시절에 아마 사귀던 여자하고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던가 봐요. 그러한 통화가 장모가 보기에는 무슨 이상한 전화로 착각을 했는데. 사위가 얼떨결에 그냥 조카사이인 우리 딸아이 이름을 댄 것 같아요.
◇ 김현정 > 그러니까 결혼을 한 후에 다른 여성에게 걸려온 전화를 장모가 의심을 하자 얼떨결에 둘러댄다는 게 이종사촌인 하지혜 양의 이름을 댄 거예요?
◆ 하OO > 네.
◇ 김현정 > 그때부터 장모는 의심을 시작하고. 그래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2년 동안이나 피해자 고 하지혜 양에게 미행을 붙였고, 그렇게 2년을 미행했는데도 아무런 단서를 잡아내지 못했다고요?
◆ 하OO > (한숨) 물론 아무런 단서가 있을 턱이 없고, 수 십명의 미행자와 수 억원의 돈을 들여서 그렇게 긴 기간 동안 미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포착된 사실이 없을뿐더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자기가 믿었던 거를 사실로 나타날 때까지 사건을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어떤 편집증적인 그런 모습을 보인 것 같아요.
◇ 김현정 > 그래서 2년 동안 아무 단서를 잡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청부살인업자를 시켜서 하 양을 살해까지 하게 된...
◆ 하OO > 심지어 우리가 중간에 미행사실과 또 집에 전화가 걸려오고 그래서 발신인추적 신청도 전화국에 여러 번 했었고요.
◇ 김현정 > 중간에 미행한다는 사실, 이상한 걸 알게 되신 건가요?
◆ 하OO > 네. 알게 됐습니다. 하도 지속되다 보니까 우리 지혜가 너무나 불안한 마음을 느끼게 됐고, 그래서 서부지검에다가 접근금지가처분신청까지 하게 됐었죠.
◇ 김현정 > 접근금지 명령이 이루어졌으니까 이제 괜찮겠구나 하고...
◆ 하OO > 저는 솔직히 안심을 한 거죠.
◇ 김현정 > 그리고 하지혜 양은 새벽에 수영을 가게 된 거죠?
◆ 하OO >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 그 길로 딸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황.
◆ 하OO > 아... (한숨) 그렇습니다.
◇ 김현정 > 딸아이가 숨졌을 때, 아버님께서는 그 재벌부인 윤 씨를 바로 떠올리셨어요?
◆ 하OO > 바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사람하고의 관계 이외에는 너무나 우리는 아무런 원한이나 어려운 점이 없었기 때문에. 오직 하나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일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바로 경찰서에다가 수사를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김현정 > 그런데 살인청부업자 2명은 이미 베트남으로 도주한 상태였죠?
◆ 하OO > 그렇습니다.
◇ 김현정 > 그렇다고 어떻게 아버님께선 베트남으로 쫓아갈 생각을 하셨어요?
◆ 하OO > 저는 그 당시 심정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서 범인을 잡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 당시에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윤길자라는 이 살인자의 처벌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었습니다.
◇ 김현정 > 살인청부업자가 중간에서 사라져버리면 그 연결고리가 없어지는 거죠?
◆ 하OO > 연결고리가 끊기기 때문에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서 범인을 잡겠다고 결심을 한 거죠.
◇ 김현정 > 나중에 잡고 나서 보니까 이 살인청부업자한테 재벌부인 윤 씨가 북한이라도 들어가라, 이런 얘기까지 했다는 걸 알게 되셨다면서요?
◆ 하OO > 네. 그렇습니다. '북한으로 들어가라'는 지시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 김현정 > 그렇게까지 철저히 감춰뒀던 살인청부업자를 아버님이 1년 만에 잡으신 거예요?
◆ 하OO > 그것이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이긴 하지만, 또 한편 생각해 보면 나 같은 많은 피해자들이 그러고 싶어도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려워서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의 심경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때 내가 돌아다니고 뭐 하고 한 게 거의 한 2억 가까이 돈을 썼습니다.
◇ 김현정 > 1년 동안 생업을 놓고 2억을 들여서 쫓아다니신 거예요?
◆ 하OO > 그렇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보통의 경우는. 그나마 제가 그러한 비용과 이런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정말 저는 가슴이 아플 정도인데...
◇ 김현정 > 그런 끈질긴 추적 끝에 이 청부살인업자가 잡히고, 재벌가 부인 윤 씨도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3명 다 감형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데요. 그런데 범인 윤 씨가 교도소 밖 호화병실에서 지낸다는 건 언제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 하OO > 병원에 있는 종사자가 그걸 저한테 귀띔을 해 줬습니다.
◇ 김현정 > 제보를 해 준 거군요?
◆ 하OO > 그렇습니다.
◇ 김현정 > 병원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이 사람이 형집행정지가 옳은 거냐, 틀린 거냐를 놓고?
◆ 하OO > 이 사건에 대한 이해를 이미 하는 사람도 있었고...
◇ 김현정 > 이미 아는 사람이 많죠?
◆ 하OO > 네. 워낙 그 당시에 충격적이었고, 가슴 아픈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 당사자가 이 호화병실에서 지낸다는 것이 병원 내에서 상당히 논란이 됐던 모양입니다, 이미.
◇ 김현정 > 대체 얼마나 호화로운 병실이었습니까?
◆ 하OO > 거의 하루 병실료가 200만원 상당이라고 들었습니다.
◇ 김현정 > 하루 200만원짜리 호화병실?
◆ 하OO > 많은 경제사범이나 특수한 정치범들 같은 경우에 그런 병실을 악용하고 운영한다는 것이 아마 일반적인 관행인 모양인데. 그 자체 내부에서 그거에 대한 심사를 하고, '잘못된 결정이다' 하는 것이 밝혀진 모양입니다.
◇ 김현정 > 병원 자체적으로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밝혀졌고. 그 사실을 아버님께 알린 건 언제쯤인가요?
◆ 하OO > 올 2월 말경이었습니다.
◇ 김현정 > 살인자 윤 씨가 2007년부터 형집행정지를 수시로 받아가면서 바깥 생활을 했는데, 2013년이 돼서야 그걸 알게 되신 거군요?
◆ 하OO >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걸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법치국가에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진행되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저는 너무 참담하고,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김현정 > 그런데 형집행정지를 하는 수도 있습니다. 물론 충분한 사유가 있다면 철저하게 이것을 판단해서 검사가 형집행정지를 내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보니까 질병이 총 12가지예요. 주요한 게 유방암 1기, 당뇨병, 파킨슨증후군, 우울증 등등인데. 이 정도는 사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십니까?
◆ 하OO > 그 모든 병명의 거의 대부분은 사실과 맞지 않고. 눈병 같은 건 세브란스병원에서 담당 안과의사가 수술을 거부하니까 다른 병원에 가서 결국은 수술을 받았어요.
◇ 김현정 > 수술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안 시켜주니까 다른 데 가서 수술 받고 올 정도다? 병을 짜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 하OO > 그렇죠. 그뿐이겠습니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러니까 없는 병을 어떻게 하면 만들어낼까 하는 그런 과정이라는 것이 병원 일지에 다 나타납니다.
◇ 김현정 > TV 다큐멘터리에서 이미 화면을 보신 분들이 많으십니다만, 윤 씨가 호화병실에서 유유히 걸어 다니고, 화장실도 가고. 심지어 바깥에 외출까지 하는 모습이 잡혔단 말입니다. 그런데 형집행정지. 그렇다면 혹시 뭔가 뒤에 알 수 없는 특혜가 있는지, 이런 것도 조사를 좀 해 보셨어요?
◆ 하OO > 지금 그건 개인이 조사를 할 입장에 있지 않아서 제가 검찰에 고발을 하고, 수사의뢰를 한 상태입니다. 머지않아 거기에 대한 결과가 나오겠습니다만, 산 너머에서 연기가 나면 그 산 뒤에 불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부조리한 일들이 수많은 과정을 다 통과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는 많은 유착과 부조리와 거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 김현정 > 재벌가 부인 윤 씨의 경우를 보면서 정말 이게 재벌회장 윤 씨한테만 벌어진 일인가. 제2, 제3의 윤 씨가 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법도 합니다.
◆ 하OO > 가진 자들은 법을 마음대로 농락하고 농단하고 그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돈 없고 권력 없고 평범한 시민들은 그 모든 것에 오히려 피해자가 되고,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하면 이런 불공평한 게 어디 있습니까?
◇ 김현정 > 물론이죠. 그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후에, 재판까지 받고 난 후에 혹시 그 재벌가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까? 사과라든지 반성이라든지.
◆ 하OO > 그런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어떤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유력한 사람들을 내세우기도 해서... 기껏 해 봐야 '거기 집 아이들이 혼사도 못하는 그런 불행한 상황을 겪고 있으니까 그걸 용서해 줘야 된다'는 식의 자기네들의 논리대로 회유를 할까, 이런 몸짓은 보인 적이 있는데.
◇ 김현정 > 자기네 가정에 딸 말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혼사가 막혔으니 이걸 좀 용서해 달라?
◆ 하OO > 네.
◇ 김현정 > 그것도 직접이 아니라 다른 유력인사를 내세워서요?
◆ 하OO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의 아픔, 그런 걸 앞서서 이해하려거나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 김현정 > 청부살인을 당했습니다. 법대생 하지혜 양의 아버님을 우리가 만나고 있습니다. 딸아이 얼굴 아직도 당연히 선명하시죠? 11년 지나긴 했습니다마는.
◆ 하OO > (한숨) 우리 아이는 특별히 정의감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참 이웃에 따뜻했습니다. 그 아이가 법대를 지원한 것도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고 약자를 돕겠다는 확실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지원했습니다. 꿈이 많았고 밝고. 참으로 우리 집안에서는 정말 분위기메이커였고. 그 아이 성품이랄까, 이런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아까운 아이였습니다.
◇ 김현정 > 그런 아이를 잃고 나서 지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어떤 추억, 어떤 기억이세요?
◆ 하OO > 정말 저도 그게... 물리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그 아이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사체실에 가서 문을 열었을 때.
◇ 김현정 > 아이가 발견됐다고 하고 사체실로 가셨어요. 가서 문을 열었을 때?
◆ 하OO > 열었을 때 그 감겼던 눈이 탁 떠지더라고요. 감겼던 눈이 떠져서 내가 그랬습니다. "지혜야, 이제 너는 편히 눈을 감아라. 나머지는 모두 이 아빠한테 맡기고 편안하게 잠들어라." 내가 울면서 눈을 감겼더니 한 번 더 뜨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똑같은 얘기를 하고 다시 감겨줬습니다. 그... (한숨) 장면에서 제가 느끼는 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정말 적극적으로 우리 아이를 지켰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에 저는 엄청 괴로웠고요. 미행을 호소하고 할 때 저도 한번 보자, 적극적으로 애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미행하는 심부름센터에 문의한 적이 있습니다.
◇ 김현정 > 미행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요?
◆ 하OO > 네, 잡기 위해서. 그때 알아보니까 한 열흘쯤 하는데 500만원인가를 요구하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해서라도 그런 걸 왜 하지 않았을까. 왜 안 했을까. 내가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아비로서의 개인적인 후회가 정말 저는.. 정말 저는 가슴 아프게 후회가 많이 됩니다.
◇ 김현정 > 아버님 잘못이 아닙니다. 아버님 잘못 아니니까 힘내시고요. 약자를 생각해서, 사회정의를 위해서 법관이 되려고 했던 우리 딸, 고 하지혜 양을 생각해서라도 아버님이 이제 하실 몫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회를 위해서 말이죠. 힘내시고 건강 챙기시고요. 이 사건이 어떻게 밝혀지는지 저희도 지켜보겠습니다.
◆ 하OO > 감사합니다. ◇ 김현정 > 고 하지혜 양의 아버지 만나봤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후폭풍 점점 거세지는 이유
엔터미디어 | 기사입력 :[ 2013-05-28 09:59 ]
-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이 건드린 을의 정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아마도 < 그것이 알고 싶다 >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이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11년 전 발생했던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은 신문지면의 한 귀퉁이로 사라져버릴 뉴스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피해자의 아버지가 그간 가슴에 묻어 둔 상처가 얼마나 컸을 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청부살해를 시키고도 법망을 피해나가다가 결국 무기징역 판결까지 받고 수감되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진단서를 근거로 호화 병실에서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모 기업 사모님을 목도한 시청자들은 모두가 그 피해자 아버지의 애끓는 분노를 잠시나마 똑같이 느꼈을 테니 말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은 이제는 상투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대기업 회장들이나 전직 정치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가고도 제대로 형을 치르기는커녕 갖은 병을 내세워 자유롭게 되는 현실, 억울하면 돈 벌라는 속물적인 이야기가 실제 현실이 되는 사회, 돈과 권력 앞에서 윤리도 도덕도 땅에 떨어지고 정의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 게다가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저희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법망조차 비웃는 그 참담함을 우리는 이상한 외출을 하시는 사모님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은 바로 그 정의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자신의 잘못된 오해를 증명하고자 돈으로 사람들을 고용해 한 개인의 사생활을 무참히 짓밟은 것도 모자라 청부살해를 지시할 수 있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까. 무기징역을 받아도 적당히 진단서를 만들어 교도소를 빠져나올 수 있고, 호화 병실에서 생활하며 필요하면 마음껏 외출도 가능한 법 집행이 과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딸을 잃었다는 고통에 피해자 가족들이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때, 정작 가해자는 호화판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까.
< 그것이 알고 싶다 > 가 방영된 후 그 후폭풍이 줄어들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은 잘못된 법 정의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가진 자들에게 심지어 죽임을 당해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는 '을의 정서'가 들어가 있다. 라면 상무와 빵 회장, 조폭 우유 등 올해 상반기에 불어 닥친 갑을 정서는 이제 사모님 후폭풍으로 정의의 문제로까지 넓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문제의 후폭풍이 더 큰 이유는 그것이 생활과 생계의 문제를 넘어서는, 한 개인의 생명과 직결된 사법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의사와 검사와 판사와 재벌가의 커넥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다. 이미 숱한 영화들이 다루었던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 그것이 알고 싶다 > 는 이것이 단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우리네 현실이라는 점에서 크나큰 충격을 준다. 많은 이들이 < 도가니 > 처럼 이번 사건도 영화화하자고 제안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법 정의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도 때로는 대중들이 거기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하나로 모음으로써 해결됐던 사례가 < 도가니 > 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법 정의의 문제를 영화 같은 대중문화에 기대게 되었단 말인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그것이 알고 싶다 > 는 그래서 제목이 지칭하는 대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서 제 역할을 해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언론이 해야 될 일이 바로 대중들이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는 일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번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편이 건드린 대중의 공분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여겨진다. 이것은 이미 현실의 변화를 촉발시키고 있지 않은가. 여러모로 대중의 시대가 보여주는 변화다. 돈과 권력으로 덮어질 수 있었던 것들도, 이제는 결국 대중들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낱낱이 실체를 드러내게 되고 그것이 현실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중의 공분이 그저 이 이상한 외출을 해온 사모님에게만 집중되고 그 하나의 문제로 덮어지지 않는 것일 게다. 결국 < 그것이 알고 싶다 > 가 거론하고 싶었던 것은 한 사모님의 빗나간 행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현재 갖고 있는 부조리한 법 집행의 문제 전반일 테니 말이다. < 그것이 알고 싶다 > 가 촉발시킨 공분은 그래서 사모님이 은근슬쩍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 거기에 관계된 모든 이들에 대한 상식적인 조처가 이뤄져야 할 것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한 노력 또한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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