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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년 만에 파기된 공약..현행법 위반한 검찰


[취재파일] 1년 만에 파기된 공약..현행법 위반한 검찰
검사의 청와대 불법 파견의 공범들
SBS | 권지윤 기자 | 입력 2014.02.06 09:42




# 파기된 공약...현행법 위반한 검찰

공약은 파기됐습니다. 법을 수호하는 검찰이 조직의 근간이 되는 검찰청법을 명백히 위반했습니다. 5일 동시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찰을 이용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해 정치권 외압을 차단하겠습니다."

지난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검찰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밝힌 내용입니다.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 즉 청와대에 검사 파견을 금지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대 정권에서 관행처럼 시행하던 검사의 청와대 불법 파견을 근절하겠다는 입장을 다른 정권과 달리 명시적으로, 또 공약으로 밝힌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 예정된 공약 파기

지난해 3월 청와대 인선작업이 진행되면서 통상 검사들로 채워지는 민정수석실 간부 인사를 눈 여겨 봤습니다. 당시 현직 부장검사가 민정비서관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청와대는 부인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밝힌 검찰의 청와대 파견 금지 공약을 모른 채 인수위에서 인선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실수라는 분석이 컸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해당 부장검사는 실제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됐고, 사법연수원 29기, 30기, 31기 등 현직 검사들도 줄줄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연히 역대 정권과 다름없는 검사의 편법 파견이 이뤄졌고, 공약 파기라고 지적까지 제기됐습니다. 저 역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연락을 취해봤고, 검찰과 법무부 간부들은 "검사직을 그만두고 청와대로 갔고,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파견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검사가 청와대로 갈 땐 사표를 쓰고 가는데, 이번 역시 사표 쓰고 나간 건 마찬가지지만 다른 정권 때와 달리 다시 돌아오진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사표 쓰고 나간 뒤 청와대 근무가 끝나면 다시 받아주는 불법 파견 형식이 아닌, 정말 사표 쓰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나섰다는 말입니다.

부적절한 처신, 석연찮은 해명, 그리고 한시적 거짓말이 아닌지 의심됐지만,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 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고, 5일 신규 임용된 검사의 임관식이 있었습니다.

#전직 검사 출신의 청와대 간부, 전직 청와대 간부 출신의 검사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검찰 인사를 발표하면서 신규 임용된 검사 44명이 포함된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신규 임용 검사 명단을 천천히 보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였습니다. 평검사도 아닌 간부급인 서울중앙지검 부부장으로 신규 임용된 검사에 지난해 사표를 쓰고 나간 검사 이름이 있었습니다.

사표를 쓰고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책임자로 갔던 전(前) 검사가 현(現) 검사로 재임용된 겁니다. 역대 정권에서 일어난 불법 파견이 똑같이 재현된 것으로, 검찰은 불법을 저질렀고, 공약은 파기된 겁니다.

검찰의 청와대 파견은 왜 불법일까. 검찰청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법 44조의2를 보면 '검사는 대통령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직위를 겸임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법이 청와대를 따로 명시하면서까지 파견을 금지한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 대상까지 적시해 파견을 금지한 법규정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 검사가 청와대로 간 이유

정권을 쥔 자의 소유욕을 가장 자극하는 존재, 그러면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누굴까. 바로 검찰입니다. 검찰이 정권을 향해 칼을 빼낼 경우엔 권력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에 당연히 검찰이 두려울 겁니다. 반대로 그 칼을 이용하고 싶을 때, 사정수사를 통해 불리한 정국을 뒤집고 싶을 땐 검찰과 은밀한 연락이 필요합니다. 둘 모두 권력자가 가진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역사를 통해 증명된 검사의 청와대행 배경입니다.

검사의 청와대 근무는 1967년 2월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초 청와대 업무 수행에 필요한 법률가 역할을 하기 위한 근무였지만, 점차 변질됐습니다. 대통령의 내심을 검찰에 전달하는 비선 역할을 하고, 검찰총장도 아니면서 또 다른 검찰의 사령탑 역할을 했습니다. 민정수석실을 통해 '우리의 뜻은 이렇습니다'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전달된 권력자의 지시는 검찰에 압력이 됐습니다. 공정해야할 검찰 수사는 오염됐고, 진실은 왜곡됐습니다. 셀 수 없이 자행된 용공조작 사건, 공안몰이, 그리고 전 정권에서 벌어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도 그랬습니다.

그 끝은 사회적 비용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정치적 논란, 정권과 검찰에 대한 되돌릴 수 없는 불신이 됐고, 우리 사회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았습니다. 이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자며 1997년 검찰청법을 개정해 관련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출범한 김대중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이번과 똑같은 불법 파견으로 법을 무시했습니다.

현실적 측면을 얘기하는 법조인들도 있습니다. 민정수석실의 역할인 사정기관 사이의 조율, 고위 공무원 비위 수집, 철저한 인사검증, 이번 정권에선 표면적으로 사라졌지만 대통령 친인척 관리 등 이런 역할을 하기에 최적임자는 '검사'라는 겁니다. 법을 이해하고, 법의 무서움을 알고, 세련되게 법을 이용할 줄 알기에 국세청, 국정원, 경찰 등 다른 사정기관보다 적임자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가 불법파견을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정말 파견이 필요하다면 검찰청법 규정을 없애면 되는데, 그렇게 폐지할 그럴듯한 명분도 용기도 없으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채 '불법 파견'이라는 꼼수만 쓰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앞서 말했듯이 검사의 청와대 파견의 부작용에 공감했기에 관련 법을 만들었습니다. 불가피하게 검찰과 조율이 필요할 경우엔 법무부를 통하면 되고, 정권 입장에서 검찰 수사를 적절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을 땐 법무부 장관에게 부여된 수사 지휘권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 공유가 있었기에 어렵사리 검찰청법을 개정한 겁니다.



# 부끄럼을 배워야 하는 정권과 검찰

'법과 원칙대로, 비상식의 상식화' 이번 정권이 불통 논란을 무릅쓰고 누차 강조한 것이자, 검찰이 맹목적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진리처럼 신봉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법과 원칙, 상식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누가 과연 그들의 원칙에 동조할 수 있을까요. 구구절절 얘기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이번에 복귀한 전 청와대 출신의 젊은 검사, 검사로서 뛰어난 능력과 자질, 품성을 인정받았기에 1년 전 청와대행이 제안됐을 것이 분명합니다. 계속 검사를 하고 싶었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부의 지시로 불가피하게 사표를 내고 청와대로 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공무원이니까 위에서 시키는 데 어쩔 수 없지 않겠어"라는 검찰 간부의 말도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자초한 정권과 검찰 수뇌부는 이런 입장을 피력하기 전에 부끄러워해야 할 겁니다. 다시 검찰로 보낼 것이었으면 당초 청와대행을 제안해서는 안됐고, 다시 받아줄 것이었다면 보냈으면 안 됩니다. 그들이 말한 입장대로라면 정권과 검찰 수뇌부는 전도유망한 후배 검사에게 희생과 편법을 강제한 겁니다. 그리곤 "검찰에 복귀시켜주는 걸로 책임을 다했다"는 건 합리화를 거듭제곱한 변명일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법 파견으로 끝난 이번 사태를 두고 한 전직 검찰 관계자의 말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최소한 부끄러움은 아는 것처럼 들렸지만, 곱씹어 보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정권과 검찰의 현 수준이 다시 부끄러워집니다.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