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파시통신 텔레파시통신 텔레파시통신 텔레파시통신 텔레파시통신 텔레파시통신
본문 바로가기

▣의문의 묻지만 흉기난동▣

자서전 낸 ‘고문 기술자’ .. " 이근안 사죄는 없었다 & 인재근 의원 “경악… 하늘이 두렵지 않나”


“난 곱디고운 사람인데…” 이근안, 사죄는 없었다
자서전 낸 ‘고문 기술자’ 이근안 前 목사
서울신문ㅣ2012-12-15 11 면


“내가 곱디고운 사람인데… 애국인 줄 알고 고문했다.”

1970~80년대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74) 전 경기경찰청 공안분실장이 14일 자서전을 들고 돌연 대중 앞에 섰다. 이씨는 자신이 고문했던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해 12월 별세한 뒤 종적을 감췄었다. 이날 서울 성동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 등장한 그는 “고문은 인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서 “간첩이라도 쥐어박아서는 안됐고 과거를 회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에 기생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선 애국으로 포장했다. 이씨는 자서전에 대공 업무, 신앙 생활, 시국에 대한 평가 등을 담았다.



●“영화 보며 내가 그렇게 악질이었나 하고 울어”

그는 자서전을 쓴 이유에 대해 “내가 고문 기술자로 등장하는 영화(남영동 1985) 제작 소식을 듣고 알몸으로 죽자는 심정으로 집필했다.”고 말했다. 김 전 고문 별세 이후 이씨가 목사가 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고 논란 속에 교단으로부터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산속 기도원에서 생활하던 그는 영화 제작 사실에 자극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서전에서는 자신의 고문 사실을 ‘시대 탓’ ‘애국’ 등이었다고 변명했다. 이씨는 서문에 “‘남영동 1985’ 영화까지 제작, 상영하면서 매도하는 것이나 동일 인물이 한 시대에는 사상범으로 옥살이하고 또 한 시대에는 민주화 인사로 탈바꿈해 민주화 보상금까지 받는 행운을 바라보면서 시대를 잘 만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또 “애국 행위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일해 옥조근정훈장까지 받았지만 5공 정권이 사라지자 고문 기술자라는 대명사가 붙어 매도당했다.”고도 남겼다.

●동료 등 35명가량 참석… 4~5명 박수도 쳐

김 전 고문과 서울 남영동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대면했던 상황도 자서전에 담겼다. 김 전 고문이 12일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자 투입된 이씨는 “물고문을 해도 소용이 없자 배터리로 전기고문을 했다.”고 밝혔다. 발가락에 소금물을 붓고 AA 사이즈 건전지로 전기자극을 줬는데 “배터리 크기를 보면 우습게 볼 것 같아 김 전 고문의 눈을 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고문 뒤 김 전 고문에게 민청학련 조직 계보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과거 행동에 대해 사죄나 사과할 뜻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끝까지 ‘회개’라는 종교적 단어만 사용했다. 김 전 고문이 자신을 용서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영화 ‘남영동 1985’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변했다. 이씨는 “물고문은 주전자로 조금씩 물을 부어 가며 하는 건데 영화에서는 샤워기 끝 부분을 빼 버리고 호스째로 물을 붓더라.”면서 “젓가락으로 맞으나 몽둥이로 맞으나 맞은 건 마찬가지 아니겠나. 나도 영화를 보며 내가 그렇게 악질이었나 하고 울었다.”고 밝혔다.

그는 상부 명령을 거부할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조직에서의 명령은 지상명령”이라면서 “때에 따라서는 건의를 하는 등 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20석 규모의 기념회장에는 이씨의 과거 경찰 동료 및 선후배, 중고교 동창 등 35명가량이 참석했다. 이씨가 연단에 나서자 4~5명 정도가 손뼉을 쳤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단독]인재근 의원 “경악… 하늘이 두렵지 않나”
“영화 과장됐다” 이근안 인터뷰에 와글와글
“애국으로 합리화” 비판 속 “자기 직분에 충실” 옹호도
경향신문 | 입력 : 2012-12-14 06:00:06ㅣ수정 : 2012-12-14 10:07:53


근안 전 경감(사진)이 영화 < 남영동 1985 > 를 본 뒤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 사실(경향신문 12월13일자 1·14면 보도)이 알려진 뒤 예술 및 시민단체의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이씨에 대한 원색적 비난은 물론 옹호·동정론도 나왔다.

이 전 경감에게 고문을 당했던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은 13일 이 전 경감에 대한 보도를 본 뒤 자신의 트위터에 "경악스럽다.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보다"라고 적었다. 인 의원은 "진실은 감출 수 없다"며 "이제라도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1970년대 간첩으로 몰려 아버지가 이근안씨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황모씨(61)는 "치가 떨린다. 양심이 있으면 후회하고 사과를 해도 모자란다"며 분노를 나타냈다. 그는 "이씨가 자신의 출세욕 때문에 고문을 한 것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 남영동 1985 > 의 제작사인 아우라픽쳐스는 이날 "이씨가 국가폭력의 피해자라는 점은 공감한다"면서도 "용납할 수 없는 반인권적 고문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재정권 아래서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모두 애국이라고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영화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이씨가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면서 "고문이라는 국가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이씨가 진짜 역사의 피해자"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정 감독은 "영화는 김근태 고문의 수기에 영화적 구성을 덧붙인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며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수집한 자료 중 영화적으로 필요한 것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반민특위 재판장에 선 친일 경찰도 '독립운동가를 잡는 것이 당시에는 애국'이라는 궤변을 내놓았다"며 "이씨가 이 같은 논리를 반복하는 것은 정의가 올바르게 서 있지 않은 한국 사회의 방증"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안모씨(33)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공무원이 있었다. 김 고문의 사망에 대해 '고문 후유증이 아닐 수 있다'는 이씨의 말은 고문을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에 대한 옹호론도 나온다. 서울 명일동에 사는 이모씨(64)는 "이씨는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애국을 한 것"이라며 "남북 대치 상황에서 간첩을 잡아 나라를 지킨 일을 먼저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퇴직 경찰관은 "당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씨는 그 시대를 충실히 산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씨의 말대로 '씹다 버린 껌' 같은 삶을 산 그에게 국가가 무엇으로 보상했느냐"고 되물었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김모씨(57)는 "굉장한 분노가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사회에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것 같아 심란하다"고 말했다.

< 배장수 선임기자·곽희양·백은하 기자 cameo@kyunghyang.com >


이근안 "세월이 지나니 나는 역적이 됐고 가족은 거지가 됐다"
"당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 행위"…"영화 '남영동' 내용도 사실과 많이 달라"
노컷뉴스 | 2012-12-14 18:14 | CBS 김연지 기자


14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 기념회에서 이근안(74) 전 경기경찰청 공안분실 실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 씨는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인사를 고문하면서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인물이다.

“이근안 고문·가혹행위로 허위 자백” 간첩 누명 어부 36년 만에 무죄 판결
조기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피랍되고 귀환한 뒤 간첩 혐의로 12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어부가 3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경향신문 | 2012.12.26 21:40



[이근안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