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조작 사건’ 덮으려 또 조작을 했나
한겨레ㅣ등록 : 2014.09.12 19:55 수정 : 2014.09.14 11:47
[토요판] 뉴스분석 왜?
‘직파 간첩’ 혐의 벗은 홍아무개씨
▶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드러나 시끄럽던 지난 3월 국정원은 또다른 ‘직파간첩 사건’을 발표했습니다. 국정원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또다른 조작 사건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지난주 간첩 혐의자 홍씨에 대해 무죄판결을 했습니다. 이번 사건도 조작일까요. 아직은 모호합니다. 다만, 법원이 이런 판단을 하기까지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건 내막을 처음 공개합니다.
“검찰이 간첩 혐의 증거로 제출한 신문조서 등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작성되었고 증거로서 신빙성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지난 5일 오전 11시1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6부 재판정. 김우수 부장판사가 홍아무개(49)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재판정에는 짧은 순간 침묵이 흘렀다. 홍씨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됐다. 법원을 나서며 홍씨는 눈물을 흘렸다. “순진한 사람을 감옥에 넣고 이건 인권이 없는 거 아닙니까.”
이 사건은 단순히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를 범한 정도의 사건일까. 홍씨는 간첩이 맞는데 재판부가 증거를 기각해 운 좋게 자유의 몸이 된 걸까. 그것이 본질일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국정원과 검찰 수사의 민낯을 살펴보면 ‘끼워맞추기식 억지수사’의 정황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 김현희 이야기로 회유
검찰과 국정원의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홍씨 사건은 이렇다. 홍씨는 함경북도 ○○군에서 송금 브로커 일을 하다가 2012년 5월 보위사령부(보위사) ○○초소 비서 김문창(가명)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 친분을 갖게 된다. 그해 7월 보위사 정식 공작원이 된 홍씨는 2013년 4월 보위사 사무실로부터 남한에서 탈북 브로커로 활동하는 탈북자 유○○를 납치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홍씨가 송금 브로커 일을 하며 남한의 유○○와 연락을 취하고 있던 것을 보위사가 알게 된 것이다.
유씨는 마침 박씨 모녀의 탈북을 의뢰받은 상태였다. 유씨는 홍씨에게 박씨 모녀의 탈북을 도와달라고 했다. 2013년 5월29일 중국으로 와 있던 유씨에게 연락한 홍씨는 북-중 국경지대로 유인해 그를 납치하려 한다. 그러나 유씨가 오지 않아 실패한다. 1차 납치 실패다. 보위사 지시로 2013년 6월22일 홍씨는 박씨 모녀를 데리고 위장탈북했다. 이때 다시 한번 유씨를 북-중 국경지대로 부르지만 유씨는 오지 않았다. 2차 납치 실패다. 홍씨는 2013년 8월16일 한국에 들어온다. 그러나 홍씨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심문을 받던 중 간첩이라고 자백했다는 게 검찰과 국정원의 주장이다.
반면, 홍씨와 변호인단은 이러한 내용들이 국정원의 강압과 회유로 이뤄진 거짓자백에 근거한 내용이라 주장한다. 국정원이 홍씨에게 감옥과 같은 합동신문센터에서 간첩이라고 거짓자백을 해야만 남한에 정착해 살 수 있다고 판단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홍씨를 찾고 나서야 홍씨는 주장을 뒤집었다.
그래도 홍씨가 3개월 넘게 일관되게 간첩이라고 진술한 것이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7일 홍씨를 만났다.
“2013년 9월3일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가 시작됐어요. 국정원 조사관이 처음부터 저더러 북에 있을 때 정보원 아니었냐고 추궁했어요. 북한에서는 정보원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두명이냐면서 북한에서 있었던 일로는 남한에서 누구도 추궁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담뱃값이라도 하라(벌라)고 했어요. 저는 제가 보위사 정보원 했다고 하면 조사관이 상금 받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정보원이라고 말했어요.”
홍씨는 자신의 이 진술이 뒤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상상하지 못했다. 홍씨는 실제 북에 있을 때 보위사 직원 김문창과 알고 지낸 것은 맞다고 한다. 홍씨의 오촌 숙부가 김문창의 동무였고 홍씨도 김문창과 안면을 트게 됐다고 한다. 홍씨는 북에서 송금 브로커 사업을 했기에 보위사 직원과 알고 지내며 정보원 역할이라도 하는 게 사업상 좋다. 다만, 정보원은 공작원이 아니다. 남한으로 치면, 경찰서 강력계 형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주민 정도의 의미다.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고 홍씨는 정보원이라고 허위로 인정했다.
“그러자 국정원은 이번에는 (보위사 정보원 될 때) 맹세문 쓰고 무슨 교육을 받았을 거라며 추궁해요. 다른 사람들은 무슨 무슨 교육을 받고 온다고 힌트처럼 알려주는 거예요. 그리고는 오늘 저녁에 잘 생각해서 (진술서를) 쓰라고 해요. 그러면 저녁에 꼬박 궁리해서 하나하나 (지어내) 써내려간 겁니다.” 국정원은 홍씨를 단순 보위부 정보원에서 남파간첩으로 추궁해갔다고 한다. 홍씨는 울면서 간첩이 아니라고 계속 부인했다. 그러자 국정원은 김현희(칼기 폭파범)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조사관이 그래요. ‘김현희 봐라. 숱한 사람 죽였지만 남한에서 결혼하고 잘 산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인정하라’고요.”
폭행은 없었지만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원하는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책상을 걷어차고 욕을 했어요. 한국 조폭들에게 저를 보내버리면 한 시간 만에 맞아 죽는다고 했어요. 또 서너 시간씩 일어서서 가만있게 했어요. 그러면 다리가 붓는 느낌이에요.”
홍씨는 남파간첩이라고 얘기해도 감옥까지 가는 건 아닌 줄 알았다고 한다. “그냥 북조선 비방하는 데에 나를 써먹으려고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감옥 가는 것인 줄 알았다면 제가 바보도 아닌데 왜 허위자백 했겠어요.”
홍씨는 또 국정원이 북에 남은 가족들을 데려다주겠다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조사관이 ‘북에 있는 가족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 같은데, (간첩이라고) 인정하면 북에 있는 가족 데려다주겠다’는 거예요. ‘평양에 있는 사람도 데려다주는데 지방에 있는 사람 못 데려다주겠냐’는 거예요.”
135일간 합신센터 독방 가둔 채
국정원이 남파간첩으로 추궁
강압과 회유로 거짓자백 유도
피의자 진술조사 작성하기 전
미리 답변을 적어놓기까지
홍씨 탈북과정 잘 아는 이들은
그가 간첩이라고 생각 안 해
국정원도 간첩 아닐 수 있는 정황
확인하고도 계속 간첩으로 몬 듯
국정원은 악의적인가 무능력한가
부드러운 반말? 강압수사 정황 인정
수개월간 국정원 조사관들과 실랑이를 계속하던 홍씨는 결국 남파간첩이라고 인정했다. 남한 내 탈북자 동향을 파악하고 남한 거주 탈북 브로커인 유○○를 납치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유○○ 납치 실패 사건’은 공소사실의 주요 내용이라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소장에는, 1차 납치 실패 뒤 백○라는 이름의 또다른 보위사 협조원이 등장한다. 보위사는 백○에게 지령을 내려 ‘유씨가 국경지대로 안 오겠다고 하면 홍씨가 박씨 모녀를 데리고 압록강(양강도 보천군 일대)을 건너도록 백○가 도우라’고 했다고 돼 있다. 2013년 6월21일 홍씨는 유○○를 유인 납치하려고 ‘장백 ○○도구 표식비’(중국 쪽 국경지대)로 오라고 유씨에게 연락하지만 유씨가 오지 않았다는 게 공소장의 내용이다.
유씨는 ‘홍씨가 탈북 브로커인 척 가장해 자신에게 접근해 납치하려 했다’고 지난해 7월 경찰에 제보했다. 그러나 홍씨는 유씨를 납치하려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탈북 과정을 기회 될 때마다 전화로 자세히 설명하며 정보를 공유했다는 것이다.
홍씨는 자신의 진술을 뒤집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3월 초(검찰로 사건이 송치된 시기) 구치소에 있는데 제 이야기가 신문에 나온 거예요. 국정원은 절대 언론에 안 내보낸다 약속했었어요. 북의 가족들이 피해를 입으니까요. 이런 작은 약속도 안 지키는데 내 가족 탈북을 돕겠다는 약속을 안 지킬 거 같았어요. 제가 속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여기까지는 홍씨의 일방적 주장이다. 실체적 진실은 수사 내용과 재판심리 내용을 함께 분석해 파악해야 한다. 홍씨 주장의 신빙성이 입증되는 반면 수사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음이 발견된다.
먼저, 강압수사 정황은 국정원 조사관이 법정에서 스스로 인정했다. 일명 ‘부드러운 반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반말로 자서전 형식의 자서전을 쓰게 했다고 한다. 홍씨는 1000장 넘는 진술서를 썼다. 홍씨는 2013년 9월3일부터 총 135일을 합신센터 독방에서 살았다. 방문은 외부에서 잠갔다.
회유수사 정황도 확인됐다. 국정원 간부급 조사관은 법정에 나와 김현희 이야기를 홍씨에게 꺼낸 것을 인정했다. 그는 홍씨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홍씨가 진술에 협조할 때마다 그가 필요로 하는 담배와 술을 제공했다. 홍씨는 수사 내내 유혹에 시달렸다.
국정원이 홍씨의 피의자 진술조서를 작성하기 전 미리 답변을 적어놓은 사실이 드러나 홍씨 변호인인 신윤경 변호사가 재판 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판사가 그렇게 조서를 작성하는 이유가 뭔지 묻자 법정에 출석한 국정원 조사관은 “중요한 진술이 일관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군색하게 답변했다.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의자가 말한 그대로 작성해야 한다. 국정원이 미리 답변 내용을 적어놓은 탓에 홍씨가 말한 대로 적히지 않은 피의자조서가 일부 있었다.
예를 들어, 국정원에서 녹화한 홍씨 심문 영상에는 홍씨가 2013년 6월 1차 탈북에 실패하고 2차 탈북을 고려하면서 ‘애초 도강을 도와주기로 한 사람이 전근 가서 다른 루트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유씨에게 말했다’고 녹화돼 있는데, 조서에는 ‘다른 루트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쓰여 있었다. 유씨에게 홍씨가 거짓말을 했다면 홍씨가 유씨를 유인 납치하려는 정황이 된다.
또 홍씨가 국정원에 제출한 ‘위장탈북 반성문’도 국정원이 미리 다른 탈북자가 쓴 반성문을 홍씨에게 보여주고 쓰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관들이 인격적으로 잘 대해주고 이에 감복해 자백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2~3개의 반성문을 홍씨에게 보여주었다.
국정원은 조사 과정에서 홍씨가 간첩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을 확인했는데도 계속 간첩으로 몰아붙인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의심은 탈북 브로커 유씨가 ‘홍씨가 보위사 정보원’이라고 알리면서 시작된다. 애초 유씨의 제보 수준은 보잘것없었다. 최초에 홍씨를 수사한 국정원 조사관은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몰라 참고자료로만 썼다’는 취지의 진술을 법정에서 했다.
유씨의 제보가 애초에 순수하지 않을 가능성을 국정원은 인지했었다. 유씨는 홍씨를 시켜 박아무개 모녀를 탈북시킨 대가로 사례비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유씨는 탈북을 제대로 돕지 못했다. 중국에서 돈만 쓴 유씨는 그래도 경비를 챙기려고 남한에 있는 ‘박씨의 친모’ 김아무개씨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유씨는 김씨에게 2013년 6월23일부터 7월4일까지 ‘너 딸 국정원 들어오면, 두교자(‘두고 보자’의 오기인 듯)’ ‘너 사위 이는 북조선 보위부 누깔(‘눈깔’의 오기, 정보원이라는 뜻)이다. 두고 보자 까불지 말라’ 등의 협박문자를 보냈다. 유씨는 김씨에게 돈을 못 받자 박씨 모녀의 탈북을 끝까지 도운 홍씨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허위 제보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씨는 이후 협박죄로 고소당했고 벌금형을 받았다.
또 홍씨가 보위사 요원이 되는 과정을 진술할 때 그린 ‘간부 이력서’의 양식이 국정원이 파악한 것과 달라 조사관은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한 국정원 조사관이 “(간부 이력서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니) 공작원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실도 법정에서 드러났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때와 비슷
<한겨레> 취재 결과, 홍씨가 간첩임을 부인하며 초기에 국정원에서 한 진술들이 함께 탈북한 박아무개(여)씨의 증언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합신센터를 나와 현재 남한에서 거주하고 있다. 박씨는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도강을 도와준 백○는 보위사 지령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도강 루트를 잘 아는 밀수꾼이다. 내가 중국돈 8000위안(130만원)을 주었다. 홍씨가 유씨를 납치하려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도강 뒤 백씨에게 돈을 건넬 때 찍은 사진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검찰과 국정원 주장대로, 백씨가 보위사와 연계된 이라면 그는 유씨의 납치에도 실패하고 돈이나 받아 챙겨 북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홍씨 일행의 탈북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또다른 남한 거주 한 탈북자 허아무개씨도 <한겨레>에 “홍씨가 간첩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홍씨 일행이) 1차 도강에서 실패한 것은 원래 일을 도와주기로 한 사람이 위험하다며 거부했기 때문인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유씨를 유인납치하려고 도강 계획을 변경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정원은 지난 2월 드러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 이후 간첩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조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간첩 증거가 있다면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번 홍씨 사건에서는 자백 진술 외에 뚜렷한 증거가 없다. 유우성씨를 간첩 혐의로 붙잡으며 원심에서 동생 유가려씨의 허위자백 진술서만 제출한 것과 같은 상태다.
국정원은 홍씨의 조사 영상물을 2014년 1월20일부터 찍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홍씨가 간첩 혐의를 부인하다가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이번 홍씨 사건을 통해 다시 확인한 국정원과 검찰의 모습은 악의적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무능력했다. 홍씨를 변호한 장경욱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국정원이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를 무마하려고 성급하게 직파간첩 사건을 조작해 언론에 발표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홍씨에 대해 회유·압박수사를 하지 않았고 간첩 자백을 뒷받침하는 관련 증거가 다수 확인돼 수사를 진행했다. 사건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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