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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기사)정치권▣

공권력 수사보다 여론의 힘에 의지하는 피해자들-공권력 불신 팽배…


공권력 수사보다 여론의 힘에 의지하는 피해자들
공권력 불신 팽배…'네티즌 수사대' 집단지성, 수사력 보완하는 조력으로 활용해야
머니투데이 | 박소연 기자 | 입력 2015.01.29 05:17 | 수정 2015.01.29 06:14




네티즌이 경찰을 움직였다.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오던 20대 아버지 A씨가 뺑소니 사고로 숨진 건 지난 10일. 결정적 증거가 없어 난항을 겪던 경찰 수사는 이후 언론보도와 SNS를 통해 사연이 알려져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자 27일 이례적으로 충북경찰청에 수사본부까지 세워지며 활기를 띠고 있다. 일부 자동차 커뮤니티 회원들은 직접 가해차량 번호판과 차종을 분석하며 수사협조에 나섰다.

바야흐로 '네티즌 수사대'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 무차별적 '신상털기'로 악명을 떨치던 이들은 이제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최신 디지털기기와 전문성에 힘입어 숨겨진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수사 필요성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수사를 촉구하고 수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들이 공권력보다 네티즌에 의지하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여론 움직여야 경찰 움직여" 피해자들 불신감 팽배

이른바 '크림빵 뺑소니' 사건 수사본부가 꾸려지기까지는 유가족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경찰은 애초에 사고현장 주변 CCTV나 블랙박스에 차량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아 수사가 어렵다고 한 상황. 유가족들은 주변 지인들을 동원해 인터넷 커뮤니티과 SNS를 통해 사연을 알리고 언론에 제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래야 경찰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씨의 동생 강경민씨는 "경찰도 한계가 있다"며 "이를테면 청주에만 BMW가 수천대가 있는데 경찰이 인력이나 예산이 충분하면 추적할 수 있지만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드릴 테니 어떻게든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론의 힘'은 통했다. 경찰청장까지 나서 이례적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졌고 그 결과 인원과 예산이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씨에 따르면 경찰은 초반에 현장 CCTV가 없다고 했으나 네티즌들 제보를 통해 근처 공장과 업체의 개인 CCTV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강씨는 "경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이해는 되지만 책임의식이 없다는 느낌도 받았다"며 "현장 증거물 수거도 다음날에야 하는 등 초동수사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선 경찰서 교통조사계 뺑소니 전담관은 "일반인들은 '보배드림'에다 차량번호가 '76 같다'고 올릴 수 있지만 경찰은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까진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76'이 맞았으면 일반인은 운이 좋았던 거고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경찰은 헛수사를 한 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보배드림에 동영상 올려두면 일반인들이야 자기 업무 하다 심심하면 몇 백 명씩 달라붙어 한마디씩 하니 맞힐 확률이 높지만 뺑소니 담당은 경찰서마다 한 명이고 증거자료에 입각해 수사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네티즌 수사대' 활약, 옳은가?

이러한 사례는 최근 트렌드처럼 굳어지고 있다. '억울해요 범인 잡아주세요, '퍼뜨려주세요'라는 제보 글이나 동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돼 여론이 집중되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거나 네티즌들이 직접 범인을 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민 참여'가 정보화시대 시민의식 발달에 따른 집단지성의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현상으로 해석했다. 이런 '네티즌의 힘'을 '공권력'과 대결구도로 보기보단 경찰의 수사력을 보완할 수 있는 조력으로 적극 활용해 시너지효과를 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대부분 국민들이 개인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현상"이라며 "여기에 사법기관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과 비관론이 더해져 인터넷을 통해 민간단위 조사가 자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렇다고 세계에서 검거율 몇 등 안에 드는 우리나라 수사력에 실제로 문제가 있다거나 무정부 상태라고 볼 수는 없다. 네티즌들이 꼭 국가기관을 불신해서 뛰어들었다고 볼 수도 없다"며 "각 분야 전문지식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조력을 제공하는 것은 시민의식이 발달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경찰이 모든 면에서 전문가일 수 없으므로 이를 적절히 활용해 순기능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사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수사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적재적소에 배분해야 한다"며 "네티즌들이 나서서 사법정의를 회복하고 힘없고 빽없는 이들의 억울함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너무 여론에만 휘둘려 여론이 집중되지 않는 시급한 사건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