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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강압-거짓말에 속아”… 5년간 살인누명 쓰고 옥살이


“경찰 강압-거짓말에 속아”… 5년간 살인누명 쓰고 옥살이
동아일보ㅣ기사입력 2012-10-26 03:00:00 기사수정 2012-10-26 08:23:14



경찰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노숙인이나 정신지체 장애인을 살인사건 범인으로 옭아매는 일은 영화에서 종종 등장한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벌어졌다. ‘진범은 따로 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일명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에서 범인으로 지목돼 5년간 옥살이를 한 정모 씨(34)에게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2007년 5월 14일 오전 5시 반, 경기 수원시의 S고교에서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가출 청소년 김모 양의 시신이 발견됐다. 김 양은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아 숨진 상태였다. 노숙인들을 상대로 탐문을 하던 경찰은 김 양이 발견되기 이틀 전 노숙인 정모 씨와 강모 씨(34) 등 6, 7명이 수원역에서 ‘2만 원을 훔쳐갔다’는 이유로 한 여성 노숙인을 심하게 때렸다는 정보를 얻고 당일 정 씨와 강 씨를 긴급체포했다.

두 사람은 이틀 전 자신들이 때린 여성 노숙인 때문에 조사를 받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정 씨는 “사건 당시 수원역 대합실에서 잠을 잤지만 김 양을 때린 적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목덜미와 정강이를 맞기도 했지만 심한 폭행은 아니어서 정 씨는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미 지문이 나왔고 네 얼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고 겁을 줬다. 동시에 경찰은 강 씨에게 “정 씨가 계속 거짓말을 해서 형사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 너라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벌금만 나오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강 씨는 한글도 깨치지 못한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이다. 정 씨도 고등학생 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지능도 일반인에 비해 떨어졌다. ‘자백하면 크게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에 넘어간 강 씨가 먼저 거짓자백을 했고 이 사실을 들은 정 씨도 말을 맞췄다. “수원역에서 마주친 김 양을 이틀 전 때린 여성 노숙인으로 착각해 S고교로 데려가 또 때렸다. 다른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도 정 씨만 남아 김 양을 때려 죽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1심에서 강 씨가 벌금 200만 원을 받은 반면 자신은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7년이 선고되자 정 씨는 항소하며 뒤늦게 “경찰이 강압수사를 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5년형으로 형량만 줄었다.

정 씨의 억울함은 경찰이 공범으로 지목한 5명이 잡히며 풀리게 됐다. 이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강 씨가 “정 씨를 포함해 누구도 김 양을 때린 적이 없다”고 증언한 것. 검찰은 강 씨를 위증죄로 기소했지만 무죄가 선고됐고, 5명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자 대법원은 올해 6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정 씨의 자백을 믿을 수 없고 어떤 CCTV에도 정 씨가 김 양을 범행장소로 데려가는 장면이 찍혀 있지 않다. 또 김 양의 사망 추정시간도 수사기관의 주장보다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다른 노숙인을 때린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정 씨는 어수룩한 표정으로 “그럼 다시 형을 살아야 하나요”라고 물었고 재판부는 “이미 형을 살았으니 그럴 필요는 없다. 너무 늦게 무죄가 나와 안타깝다”며 위로했다. 정 씨는 이미 5년형을 만기 복역하고 올해 8월 2일 출소했다.

정 씨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38·사시 45회)는 “수사기관의 실적 욕심에 사회적 약자가 희생된 사건”이라며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국가 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혼한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외아들 정 씨는 수원의 한 노숙인 자활센터의 도움을 받아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했던 A 형사는 또 다른 영아유기살해 사건에서도 여성장애인을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로부터 징계 권고 결정을 받았다. 그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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